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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漢書)에 이런 (사건)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선제(宣帝.기원전 90~49년 제위)때 승상을 지냈던 병길(丙吉.기원전~55년)이 
어느 날 외출을 합니다. 한참 길을 가다 시장거리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패싸움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병길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쳐 
가던 길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러다 이번엔 소가 끄는 수레를 몰고 가는 농부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농부는 소를 향해 크게 소리치며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는 혀를 길게 내밀며 침을 질질 흘리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가쁜 숨만 내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병길은 즉시 농부에게 다가가 대체 지금까지 몇 리나 수레를 몰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또한 소의 기운과 같은 건강 등에 관한 부분을(최근의 상태) 자세히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병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하인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병길에게 물었습니다. 

< "사람들의 싸움은 무심하게 지나치면서 고작 동물인 소가 숨을 헐떡이는 것에는 
유독 관심을 많이 보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 다른 숨은 뜻이 있는 것이옵니까?" >

그러자 병길은 너그럽게 웃으며 하인에게 다음처럼 답합니다. 

< "백성들이 싸우는 일은 직책상 장안의 현령이나 경조윤[한(漢)나라 때 하급 관리.]이
나서서 말리고 주변을 정리하면 될 일이다. 나는 승상으로서 연말에 가서 상황에 근거해 
현령이나 경조윤이 일을 잘 처리했는지 살핀 다음, 상벌을 황제에게 보고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의 기운을 살피는 일은 다르다. 지금은 계절상 봄으로 그렇게 더운 절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소가 숨을 헐떡거리며 기운을 내지 못한다면 이것은 혹시나 절기가 고르지 못해 
장차 나라에 동물의 전염병 같은 큰 재난을 염려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승상이 해야 할 일이다." >

< "무당은 공짜 돈 안 받는다!" > ... 저의 어머니가 가끔 하시는 말입니다. 
저를 포함 집안에 종교를 믿는 가족이 없는 관계로 주변에서 누군가가 앞일을 잘 본다는 얘기만 나오면 
친구 분과 기어코 한 번은 다녀오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성격인지라 ... 그때마다 당신의 앞일보다는
자식의 앞일만 챙겨 오시는 통에 아들과 사소한 말다툼이 일 때마다 금언처럼 하시는 말입니다. 

무당이 사이비든 혹은 진정으로 신(神)빨이 최고조에 오른 신령님이든 ... 어쨌든 그들은 
나의 어머니 전언에 따르면 "공짜돈은 받지 않습니다." ~ 최소한 무당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 하물며 국민들의 세금으로 존재하는 나랏일을 하는 작자들이 염치불구하게도 
무당도 받지 않는 공짜 돈을 마구 받아 처먹는 작태에 그저 한 숨만 절로 나올 뿐입니다. 

소의 기운을 살펴 절기의 이치를 깨우치는 승상의 지혜로움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백성들의 싸움을 말리고 주변을 정리해야하는 현령의 순발력 또한 바라지도 않습니다. 
대신 국민들을 속이는 천박한 기만의 짓거리만이라도 하지 말았음을 바랐습니다.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수많은 구성원들은 모두 본인들만이 욕망하는 삶의 위치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삶의 (진정한)주인 됨을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주인됨>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본인이 원하고 욕망하는 모든 것들이 오직 본인의 의지대로 
완벽히 이루어져야 진정한 <주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주인이다!"> 라는 
의욕에 가득 찬 (간편한)외침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 이러한 외침(주장)만으로 편리하게 주인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주인>이 되고 싶다면 본인의 (단순한)주장이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주변 다른 수많은 구성원들 간에 소위 <인정투쟁>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전쟁]

싸움(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할 것이며, 패자는 죽음으로써 <주인됨>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승자는 패자를 죽이지 않습니다. ... 승자의 <주인됨>은 오직 패자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승자는 싸움에서 승리한 후 패자를 <노예>로 삼습니다. ... 본인 옆에 전리품인
<노예>가 있어야만 비로소 승자는 진정으로 <주인됨>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주인과 노예, 지배와 예속의 관계 생성]

이것이 바로 헤겔이 자신의 저서 <정신현상학>에서 언급했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입니다.
그런데 (주인-노예) 까지의 관계는 대강 그 의미는 알겠는데 "변증법"은 왜 붙었을까? 

노예는 패배의 대가로 목숨은 건졌지만, 대신 주인을 위해 노예의 삶을 살아갑니다. 
주인을 대신에 농사도 짓고,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합니다. ...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제 노예는 노동(농사)을 통해 <생산>이라는 숭고한 의미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작물들이 
노예 자신의 의지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참다움을 깨닫게 됩니다. ... 나무로 소소한 
가구들도 만들어보고, 옷도 만들며 닭이나 양들을 키우면서 생명의 신비로움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노예가 이렇게 노예생활동안 삶의 참다운 의미를 깨우쳐갈 때, 주인은 게으르고 나태해져서 
무기력의 수렁 속으로 더 깊게 빠져버립니다. ... 이쯤 되면 주인은 단순히 주인의 <형식>, 즉 
주인의 외피만 둘러쓰고 있는 자립성을 상실한 실질적 노예 상태가 되는 것이며, 반대로 노예는 
본인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은 실질적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 주인과 노예의 전복!
말 그대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헤겔의 이러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권력이 쥔 자들이 어느 순간 노예로 전락하여 <천박한 정신>으로 외화(外化)되는 것을 
지금 전 국민이 목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집니다. ... 동시에 무대의 조명이 밝아집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피아니스트)이 무대 중앙에 거만하게 놓여있는 
고풍스런 피아노를 향하여 조심스럽게 다가옵니다. 순간 모든 공간은 정적으로 메워집니다.

< 4분 33초 ........ >

적막, 정적, 침묵, 고요 등 ... 아무튼 그 무엇이 됐든지 간에 
여인(피아니스트)은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서 <소리 없음>을 연주합니다.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의 <4분 33초> 라는 작품의 내용입니다. 
작가가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음악은 바로 <4분 33초> 동안의 적막 속에서 발산되는 
청중들의 <수군거림> 그 자체입니다. ... 수군거림(소음)이 바로 음악(작품)인 것입니다.

"소음(노이즈)" 이라는 불편하고 거북한 현상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기성 가치관의 
전복을 시도함으로써 이제 가장 반질서적인 노이즈는 또 하나의 질서적인 형태를 갖게 됩니다. 
한마디로 <노이즈가 질서를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정권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서서히 수장되어가고 있는 시간에 공백을 둠으로써 
국민들의 비명과 절망적 수군거림을 본인들만의 예술적 작품(?)으로 창조하려 했던 걸까요? 
아쉽지만 이미 주인됨을 상실하고 <천박한 정신>으로 전락한 그들의 어이없는 작태는 
너무나 불편하고 거슬리는 "소음(노이즈)" 그 자체일 뿐입니다. 





[@ 어처구니가 없어 화가 많이 나는 하루였습니다. 
오늘부터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모두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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