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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4
노식이 여강 태수로 감에 제자인 백규와 현덕을 불러 이야기하던 도중
그때 한구석에서 조용히 사제간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제자 하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승께서 특히 저희를 부른 데에는 달리 하명하실 일이 있어서인 줄 짐작되옵니다만...'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되도록 말수를 줄이려는 화법이었다. 이제 스승님의 뜻은 대강 짐작할 둣도 하오니 저희가 해야할 바나 알려주십시오란 뜻이 뒤에 숨어있었지만...

p 40
스승 노식이 문장과 학식을 떠나 이를 활용하고 실천하기를 아래와 같이 이르자
'저들이 요사한 가르침으로 백성을 현혹시키거든 너희는 참된 덕으로 깨우쳐주고, 거짓 속임으로 불측한 세력을 키워ㅜ가거든 인의와 협행으로 흩어버려라..'
이에 시원하게 대답한 공손찬과 달리 유비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 비는 스승님의 문하에 든 날이 짧아 큰 가르침의 대강조차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거기다가 나이는 어리며 천성이 게으르고 어리석어 홀로 깨우칠 재간도 없으니 다만 아득할 뿐입니다.'

- 자신을 낮추고 그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가 주지 못하여 안달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삼국지를 통하는 유비의 놀라운 능력일 것이다. 비록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묘한 느낌을 주는 아이였다. 남달리 잘 생긴 것도 아닌데, 여러 제자들 사이에 끼여 앉아있으면 무슨 환한 빛에라도 둘러싸인 듯 한눈에 드러나는 얼굴이었고, 일곱다 다섯치의 키도 열 자가 넘는 다른 제자보다 우뚝해보였다. '는 유비의 기운을 따르지는 못할진저, 그의 말과 행동을 본떠 그의 큰 뜻과 포부를 '대강이나마 깨우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삼국지를 읽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 47
유비가 노식이 소개해준 정현 선생을 만나기 전 어머니와 학자를 대줄 유원기를 찾아보기위해 탁현 누상촌으로 가던 길이다.  징검다리 없는 개울을 옷을 걷어 건넌 후 건너편 어떤 노인의 부탁아닌 부탁을 듣고 개울을 다시 건너 그를 업고 되돌아오는 중 노인이 건너편에 보퉁이를 두고왔다고 소리치자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네가 어딜 가서 찾는단 말이냐? 잔말 말고 다시 나를 업어라.'
...그러나 유비는 다시 말없이 그 늙은이를 업었다. 그냥 떠나버리면 이미 한 수고까지 소용없어져 버리지만 한번 더 다녀오면 그 수고는 두배로 남게 된다.

- 언제나 상대에게 스스로를 남기는 유비의 행동과 소양은 실로 어떤 것이 결국 이득인가를 범인들에게 깨우쳐주는 바가 있다.

노인은 유비의 그같은 생각을 물어 듣고는
'그것이 바로 개같은 선비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인의의 본체다. 그걸로 빚을 주면 빚진 자는 열 배를 갚고도 아직 모자란다고 생각하며, 그걸로 다른 사람을 부리려 들면 그 사람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일하기 된다...하나 일러주마 그걸 쓸 때는 결코 남이 네가 그걸 쓰고 있다는 걸 알게 해서는 안된다.'
'저는 저 자신도 그걸 잊고자 합니다.'

p 50
노식을 말리려다 허탕을 친 노인이 말하길
'너는 태뢰의 소를 아느냐?... 뿔이곧고 잡털이 섞이지 않은 소를 골라 콩을 먹이고 비단으로 소룰 치장함은 그 소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의 제사에 그 고기를 쓰고자 함이니, 어리석은 소는 백정의 도끼가 정수리에 떨어질 때에야 비로소 슬퍼한다. 벼슬도 그와 같으니...'

p 51
노인은 계속 묻는다.
'그래 이제 네가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
'장부가 품은 뜻 중에 제세안민보다 더 큰것이 있겠습니까? 새로운 스승을 구해 부족한 배움을 이으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다음은 묘당에 높이 올라 큰 관과 수염을 쓰다듬으며, 위로는 예악을 말하고 아래로는 오형으로 다스릴 작정인가?'
'이 비 비록 아는 것은 적으나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평안케 하는 것이 어찌 예악과 오형 뿐이겠습니까? 하지만 반드시 그 길 뿐이라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 스승 노식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나듯 유비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지만, 상대로도 하여금 자신을 존중하게 만들어 결국 자신의 뜻한 바를 전하고 있다.
주고받음이 명확하여 그것으로 셈이 끝난다고 생각되는 것이 보통의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관계일 것이다. 허나 유비는 그 관계에서 셈을 넘어선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였고 그로 사람을 모으고 뜻을 이루고자 했다. 유비가 만들고 또 스스로도 잊고자 하였던 그 무언가가 바로 개같은 선비들이 말했던 인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수많은 영웅들이 저마다의 꿈과 포부를 가지고 활약하는 와중에도 유비의 발자취가 가장 보잘것 없어보이는 동시에 가장 두렵게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연유일 것이다.

p 109
손견이 하비성 태수의 요청을 받아 도적 장독목 일행을 소탕하고 잔치를 열어 장수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세상이 평온할 때는 지킬 대의는 언제나 외길일세.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대의도 따라서 어지러워지네. 지금도 당연히 부끄러워해야할 도적은 의를 내걸고 당당해야할 관리들은 거꾸로 도적으로 몰리고 있네. 이렇게 나가다 보면 백성들은 점점 어느쪽에 옳은 명분이 있는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마침내는 힘이 곧 대의가 되는 시대가 오고 말 것이네...'

- 어지러운 세상의 대의는 과연 어지러워 힘과 같은 것이 되어버리는지. 아니면 그럴 때일수록 더욱 굳건한 외길이어야 할른지. 아니면 스스로가 힘이 있다 생각하는 손견이 자신이 가진 힘이 곧 명분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인지도 모른다.
손견이 아내 오씨을 들이고자 하였을 때, 오씨의 숙부 오항이 혼인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로
'도적떼 사이로 몸을 날린 것은 용기가 아닌 가벼움이며, 도적떼를 속인것은 지혜가 아닌 간사함이다. 그리고 그가 그 두가지로 뜻한 바를 이루어 앞으로도 더 자주 르 둘에 의지할 것이다.'
를 말했다는 점이 새삼 날카롭게 들린다.

p 124
장사평을 비호하던 장비가 소쌍을 도우고자 한 관우와 처음 맞닥뜨렸을 때. 유비의 말은 여러번 읽어 욀 가치가 있어 옮겨온다.

그럴 보고 어떻게든 싸움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한 유비는 기억을 다해 상대를 만난 것이 언제 어디였던가를 되살려보았다. 그러자 무슨 영감처럼 스승 노식의 초당이 떠올랐다. 칠팔년전 어느 날 유자 차림으로 노식선생에게 좌씨춘추를 물으러 왔던 그 장한임에 틀림없었다.
거기서 유비는 돌연 보검을 빼들고 소리쳤다.
'장비, 창을 거두어라.'
'관공께서도 잠시만 노여움을 거두시오. 무예를 겨루는 일은 시비를 가린 뒤에라도 늦지 않소이다.'
'귀하는 누구시길래 이 몸의 성을 아시오?'
'공은 어찌 동문도 알아보지 못하시오?'
'그렇다면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소이다. 나는 일신이 기구하여 스승을 정해 배운 적이 없소.'
'한마디를 배워도 스승은 스승, 공은 벌써 노식 선생의 초당이서 좌전을 깨우침 받은 일을 잊으셨소?'
'노식 선생처럼 고명하신 문하에서 배운 귀하가 어인일로 시정잡배들의 싸움에 끼여드시오?'
'비록 성은 다르나 저 아이는 내 아우외다. 그런데 공께서눈 무슨 일로 저 아이와 중한 병장기를 맞대게 되었소?'
'장사치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와 때는 나라도 간섭을 않는 법이오. 그런데 저자가 어느 간사한 장사치에게 팔려 탁군을 그에게만 독점시키고 있다기에 그 이치를 타일러주러 했으나, 말을 들을 귀가 뚫려있지 않아 부득불 이 청룡도로 훈계를 하려 한 것뿐이오.'
'그 일이라면 이 유아무개에게 맡기시오. 반드시 창칼을 맞대지 않아도 좋은 해결이 있을 것이오.'
...
'실은 내가 공이게도 묻고 싶은 게 있소. 내가 듣기로는 좌전이 힘주어 말하는 것은 대의와 명분이라 했소. 그런데 오늘의 시비는 공이 그때 그토록 깨우치고자 했둔 좌전의 가르침과 반드시 맞지는 않는구려...공은 내 아우의 허물을 나무라고 계시나 따지고 보먼 공 또한 소쌍이란 장사치의 이익을 위해 칼을 빼는 셈이 되니, 그게 어찌 대의명분을 아는 호걸의 처사일 수 있겠소?'
'이놈이 나선 것운 소쌍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 아무개란 장사치의 행패가 미워서었소.'
'군자는 궁하다고 말을 함부로 말을 돌리지 않는 법이라 들었소. 그렇다면 공은 소쌍이란 장사치와는 전혀 무관하시단 말씀이오?'
'그렇지는 않슈. 나는 지난날 그에게 약간의 후의를 입은 적이 있소이다.'
'그것 보시오. 그렇다먼 장세평의 후의를 입은 적이 있는 내 아우의 허물만 어찌 탓할 수 있겠소?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공의 허물을 들추자는 뜻은 아니오. 다만 내 아우의 입장도 공께서 헤아려 달라는 뜻일 뿐이오. 공이 원하시는 바는 꼭 이루도록 해드리겠소.'
그리고 관우를 주루로 청하고 소쌍과 장대인도 모시고 오도록 한다.

p 138
장세평이 자리를 뜨고 유비가 소쌍에게 글과 재리에 눈뜬 이유를 묻자.

'작게는 천금을 모아 일신을 평안하게 하기 위함이고, 크게는 문신후처럼 기화를 사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기화라면?'
'당장은 물건도 아니고 금전도 아니지만, 사서 두면 재물도 되고 명예도 되고 벼슬도 되는 재화입니다.'

p 230
황건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도 조정에서 관작은 커녕 비단과 같은 상도 내려오지 않아 유비는 마음이 어두워 지고 함께 이끌고 온 오백 군사를 먹이고 입히는 일도 걱정이 되던 차 낭중 장균을 만나
'그런데 현덕이 낙양에 웬일인가?'
'작은 공으로 나라의 보답을 구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닌 줄 알지만, 딸린 수하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치 못해 이렇듯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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